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리엇 네스 (문단 편집) === 말년 === 국장직을 사임한 네스는 1942년 워싱턴으로 건너가서 국방부 보건복지국 사회보호 프로그램의 책임자가 된다. 당시는 2차대전이 한창이었던 시기였으며 각지로 파병한 미국 군대의 열악한 위생상태와 성병의 창궐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는데 네스의 역할은 바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네스는 이 역할도 충실히 잘 해냈으며 그가 운영한 프로그램은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다. 2차대전이 끝나기 직전부터 네스는 중국에서 옷감을 수입하는 무역회사를 운영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이를 바탕으로 1947년에는 클리블랜드 시장에 출마했지만 클리블랜드 시절에 있었던 각종 스캔들과 반노동운동 성향 등이 부각되면서 선거에서 완패하고 만다. 이 때부터 네스의 본격적인 몰락이 시작됐는데 선거비로 많은 자금을 날린데다 그가 운영하던 무역회사는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미국과 중국의 무역이 전면 중단되는 바람에 문을 닫았다. 그는 남은 돈을 신생 보안회사에 투자했는데 이 회사에서 자랑하던 보안기술이 사실상 사기였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회사는 문을 닫았고 네스는 결국 무일푼 신세가 되었다. 이후 네스는 서점의 점원이나 식당의 서빙을 하는 등 어렵게 살다가 1953년 제지 공장에 취업했다. 이 때 그는 동네 주점에서 술을 마시면서 옛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공장 동료의 소개로 오스카 프렐리라는 저널리스트를 만나 자신이 금주령 시대 마피아와 싸웠던 시기의 각종 비화와 관련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그의 이야기에 빠져든 프렐리는 네스를 설득해서 함께 <건드릴 수 없는 사람들(Untouchables)>이라는 책을 썼다. 1957년에 출간된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큰 인기를 끌었으며 잊혀진 영웅이었던 네스는 다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네스는 이런 영광을 직접 보지 못하고 이 책이 출판되기 6개월 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당시 네스에게는 1만달러에 가까운 빚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네스의 장례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으며 그의 아내는 네스의 시신을 급하게 화장한 후 유골을 집에 보관했다. 네스가 사망한지 40년만인1997년에 클리블랜드 주의 주도로 엘리엇 네스의 장례식이 제대로 치뤄졌으며 그의 유골은 클리블랜드의 레이크뷰 호수에 뿌려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